주말 일기 (2011년 5월 7일 토요일 날씨 맑음)
주말 일기
(2010년 1차 KOV 54기 몽골 컴퓨터분야
어버이 날을 하루 앞둔 주말 오전에 세수도 안하고 집을 나섰어요. 토요일이지만 은행이 열려있어서 은행에 가서 세금을 냈어요. 인터넷 회사에 가서 선불인 인터넷 요금도 한꺼번에 두 달치를 냈어요. 사진 현상소에 가서 사진 현상도 맡겼어요. 사진가게 아가씨한테 일요일인 내일도 일하냐고 물으니 출근 한다네요. 물어보고 나서 돌아오다 보니 이상한 질문을 했던 것 같았어요. 헤헤^^
휴일인 주말이지만 학교에 갔어요. 오늘은 코이카(KOICA) 현장지원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스물 다섯 대의 최신 컴퓨터가 들어앉을 우리학교 “컴퓨터 종합교육센터” 책상 조립이 완료되는 날이예요. 우리학교 컴퓨터공학과의 남자들 네 명이 모두 다 출근했어요. 조립 작업은 목수 두 명이 하고 있었지만, 예전에 그려놓은 책상 배치도보다 책상이 세 개가 더 납품되어서, 재배치가 필요했어요.
재배치를 확정하고, "컴퓨터 종합교육센터" 명판를 만들러 척터새흥과 함께 간판가게에 갔어요. 나는 쬐그맣고 예쁘고 튼튼한 걸로 만들고 싶었는데, 척터새흥은 명판을 작은 칠판만한 크기로 하고 싶어해서 조금 많이 황당했어요.^^
점심시간에 맞춰서 척터새흥 집에 갔어요. 척터새흥의 부인인 초카는 우리학교 부속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라서, 예전에는 나랑 내 능숙하지 못한 영어회화 수준에 맞춰서 대화를 했었는데, 요즘엔 내가 못 알아듣는 몽골어 단어를 말할 때에만 영어로 말하고, 나와 몽골어로만 대화하고 있어요. 오늘의 점심메뉴는 금방 만들어낸 따끈따끈하게 볶아낸 볶음 국수인 초이왕이었어요. 지난 1년 동안 내가 먹어본 여러 곳의 몽골의 음식 중에서 그녀의 음식은 언제나 내 입맛에 제일 잘 맞아요.
점심을 먹고 척터새흥의 장인어른인 초카의 부모님 댁에 갔어요. 우리나라의 50년대 한국전쟁 직후 판자촌 마을 같은 곳에 척터새흥의 장인과 장모 둘이서 살고 계셨어요. 텃밭이라고 말하기엔 훨씬 넓은 마당 한 켠에 우리 엄마의 베란다 텃밭처럼 여러 가지 식물들을 키우고 있었어요. 오이, 상추, 고추, 블랙베리, 차차르강...
판자촌 마을의 그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구경하며, 이분들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정겨움이 느껴졌어요. 마을의 골목 골목마다 물웅덩이가 있었고, 목줄이 풀린 착하디 착한 커다란 개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집안에는 나무판에 붙여진 전기계량기까지... 내 어릴 적 가난했던 우리 동네 모습이랑 비슷했어요. 몽골이 자꾸 좋아지는 이유는 휘황찬란한 수도 울란바타르의 풍경이나, 현재 건방과 자만에 빠져있는 우리의 모습과 달리, 따뜻함이 있고 정겨움이 있던 우리의 과거 모습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드디어 세수를 했어요. 하루종일 세수도 하지 않고 돌아 다녔다는게 오늘 만났던 사람들에게 미안했어요. 서둘러 세수를 하고 나서, 집주인 마이드르가 참가하는 노래 경연 대회에 구경갔어요. 러시아 영사관에서 주최한다고 하는 러시아 승전기념일 노래대회예요. 마이드르의 부인과 그 부인의 동생과 그 동생의 딸과 함께 나란히 앉아서 응원했어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마이드르보다 다른 참가자들이 너무 너무 노래를 잘 불렀어요.
주말 내내 집구석에 쳐 박혀 지냈던 한국에서의 내 습관을 아직 다 버리지는 못했지만, 주말 내내 몽골에서 조차도 집구석에 쳐 박혀 지내는 나를 밖으로 이끌어 준 척터새흥과 마이드르의 마음이 고마왔어요.
오늘은 신발 수선의 체험을 해보려고 해요. 등산화 바닥이 닳아 헤어졌는데, 신발 수선가게에서 등산화도 수선해준다는 유익한 정보를 입수했거든요. 2,500투그릭(약 2,200원)만 들이면 1~2년은 거뜬히 더 신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여름엔 몽골에서 튼튼하게 수선될 이 등산화를 신고, 지금은 러시아의 국토가 되어버린 바이칼 호수로 여행 갈 거예요.
지금 몽골 다르항엔 비가 내리고 있어요. 비가 오니 기분이 좋아져요. 비가 그치기 전에 여느 몽골 사람들처럼 우산을 쓰지 않고 즐겁게 비를 맞으며 신발 수선을 하러 다녀와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