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간이 위대한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할 길

 

어릴 적부터 수 많은 동화와 만화, 그리고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에는 항상 귀엽고 작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엄청 크고 엄청 강한 험악한 동물이나 움직이는 바위나 산, 나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런 웅장한 존재는 대부분 귀엽고 작은 동물들을 괴롭히는 악당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무의식적인 생각은 작고 귀여운 것은 선이며 보살핌을 받아야 하며, 크고 위대한 것은 악이고 무찔러야 하는 존재로 각인까지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산문 “Adolf”에서 아버지께서 상쾌한 아침 퇴근길에 주워오신 작고 귀여운 아기 토끼는 당연히 선의 존재이며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더군다나 엄마 토끼와 형제 자매 토끼들마저 모두 잃은 가엾은 고아 토끼였으니, 이런 아기 토끼를 맞이할 때, 사랑의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분명 악의 기운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탄광의 깊은 갱도에서 밤새도록 일을 하고 돌아오는 아침 퇴근길을 좋아한다. 그 길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아버지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자연의 품이다. 아침 이슬이 맺혀있는 풀잎과 아침 식사를 나온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힘들고 지친 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싹트는 봄 풀 새싹의 기지개처럼 희망과 용기, 축복의 기운을 북돋아준다. (p.32. 10~11. “그는 모든 새와 떨리는 풀의 모든 흔들림을 지켜보고, 댕기물떼새의 윙위거림과 굴뚝새의 짹짹거림에 화답했다.”)그러한 희망과 축복의 길에서 만난 어린 토끼는 절망의 나락에 빠져있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는 스스로는 도저히 목숨조차 이어갈 수 없기에 아버지는 작고 미약한 존재에게 생명의 희망을 불어넣어 준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거기까지이었어야 했다. 엄마의 주장처럼 이 나약한 존재를 데려와 키우다가 어차피 죽을 생명이니 그냥 원래의 모습으로 두었어야 했는가? 아버지의 행동처럼 가여운 고아가 된 어린 토끼를 데려왔어야 했는가? 더 나아가 아이들이 처음에 보여주었던 행동처럼 더 큰 관심과 사랑으로 한없이 살펴주고 돌봐주어야 하는 존재로 길들였어야 했는가?

 

하지만, 결국, 토끼 Adolf는 떠나버린다. 인간에게 길들여짐을 경멸하듯 거들떠도 보지 않고 떠난다. 그리고 위대한 자연의 일부분으로써, 그 위대한 자연의 작은 구성원으로써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작가는 깨닫게 된다. 자연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작고 가엾은 작은 존재일지라도 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라는 명분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인간과의 관계는 서로를 경멸하고 더욱 가까워 질 수 없는 사이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p.38 2~3. “이 작은 야생의 생물은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다가서면서 우리의 손아귀에 있는 동안에는 아무 소리도 없이 질식되고 있었다.”)

 

인간이 위대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위대함이 자연의 위대함에 비해서는 한낱 모래알뿐이라는 사실도 틀림없다. 자연을 소유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연은 인간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일 뿐이다. 산을 밀어 나무를 베고 길을 내면, 자연은 인간에게 산사태의 재앙을 돌려준다. 원유를 캐서 수 백 년 동안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을 마구 생산하고 사용하니, 그 잔존물의 찌꺼기로 힘겹게 살아가는 자연의 작은 생명체들은 인간의 음식으로 되돌아와서는,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자연에서 혼자의 모습으로 생존했던 야생의 어린 토끼도, 인간의 품으로 들어온 후에 인간의 이름을 부여 받고, 인간으로부터 음식을 얻어먹지만, 길들여진 토끼는 인간의 터전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반항한다.

 

토끼도 자연을 일부분이다. 그 자연은 자연의 모습대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이 소유하고 보살피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살아가도록 자연에 품에 맡겨야 한다. 어린 생명의 목숨을 살려주었지만, 그 목숨조차도 그들의 운명이고,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모습이다. Adolf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생각을 하는 바로 그 순간이 자연에 대한 소유욕의 마음이 생긴 것이며 통제의 자만심인 갖게 된 것이다. 자연은 자연에게 맡기고 인간도 그 위대한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을,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살아가야 한다. 그 보답으로 자연은 맑은 아침 이슬이 맺힌 평온한 아침의 오솔길을, 자연과 인간이 영원히 함께 행복해할 수 있는 공존의 길을 인류에게 나눠줄 것이다. (p.52 2~4. “나는 온유한 자요, 나는 의로운 자요, 나는 토끼요. 그런데, 나머지 당신들 모두는, 악행을 범하는 자이고, 당신은 악한 자이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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