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서양미학사의 핵심을 요약하여 서술

아름다운 일출이나 일몰, 철새의 군무, 반가사유상의 미소 등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은 많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모두에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또 원시시대와 현대시대에서도 그러한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을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완전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즐겁게 해주고 감탄을 하게 하는 것들을 아름다운 것이라 하였다. 그 아룸다운 것들에는 습관이나 행위, , 과학, 진리까지도 적용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직업, 법률, 국가에서의 아룸다움에 대해 적용하였고, 플라톤은 도덕적, 인지적 차원에도 적용하였다. 소피스트들은 아름다움을 시각과 청각에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정의하기도 하였는데, 고대 말기 스토아 주의자들은 감각적 대상에 국한하였다.

피타고라스 주의자들은 아름다움을 청각적 조화, 시각적 비례 등과 같이 수에 입각한 객관형식에 있다고 사고를 가지며, 질서와 비례는 아름다운 것이고 수 때문에 모든 사물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고전기 그리스에서는 조화와 균재, 질서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가하였으며, 인체의 적절한 비례에 대한 규칙을 만들어 조각품에 적용하기도 하였다.

플라톤은 미의 본질을 추구하였는데, 구체적 대상으로서의 아름다움과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구분하였으며, 진정한 아름다움은 현상계가 아닌 본질의 세계, 즉 이데아계에 속한다고 생각하였다. 감각적 대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수적 비례라는 추상적 개념을 통해 이데아계의 아름다움과 연관되어있다고 설명하였으며, 플라톤의 설명대로라면, 현상계의 아름다움은 이데아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상기시키고 있을 뿐 참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다.

플라티노스는 아름다움을 형태를 지닌 사물들의 조화로운 배치와 연관되는 균제미보다는 색채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다. 아름다움은 형태를 가진 부분들의 복잡한 대상뿐만 아니라, 태양이나 황금, 별빛 등과 같이 형태가 없는 대상에서도 나타나므로 질적 비례관계에서 비롯된 조화가 아닌 질적 성질에 있다고 하였다. 플라티노스는 빛깔과 같이 형태가 없는 것에서 아름다움은 근원을 찾으며, 아름다움은 구체적 형태를 갖춘 물질의 영역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중세시대의 예술적 관심은 물질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영적 세계를 묘사하기 위해 기하학적 단순화를 통해 정신의 세계를 강조하고, 빛과 색채를 이용하여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비스러움을 표현하였다. 이것은 모든 사물의 표면 밑에 있는 초자연적 의미가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회화는 현존하는 대상이 사라지게 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그것을 재현해 놓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이러한 사물의 재현이라는 정신에 의해 추구된 대표적 예술이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이다. 르네상스 회화는 색이나 빛의 표현이 아니라 형태의 생생한 재현에 몰두하기 위해 기하학적 규칙을 활용하게 되면서 비례론이 부활하고 원근법이 중시되면서, 르네상스 시기 화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작업을 일종의 과학으로 간주하며, 자연을 단순희 거울처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아름다움으로 재현하고자 하였다.

15~19세기까지 서양 미술이 추구하였던 기본 정신은 자연의 이상적 재현이었는데, 자연속에 흩어져 있는 아름다움을 모아 이상화시키는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인간의 영원한 모습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현대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전통적 형상, 색채, 이미지 조형 방식 등에 도전을 해왔다.

플라톤은 아름다운 사물들이 아름다움의 본질을 완전하게 드러내지 못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아름다움 자체 그 본질은 아름다운 사물에 의해서 보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은 본질적 아름다움의 안내자라고 말할 수 있다.

 

9강 다원주의, 개인주의, 공동체주의에 대해 핵심을 요약하여 서술

20세기 이후의 현대사회를 흔히 다원주의 사회라고 하는데, 한 사회 안에서 다양한 가치가 서로 대등하고 자유롭게 공존하며 경쟁을 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전근대사회에서는 특정 지배층에 의해 사회 운영이 주도되었고, 사회의 각 구성원들의 다양성은 용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개인의 정치적 권리 보장 요구에 따라 등장한 다원주의는 민주주의 사회를 전제로 성립할 수 밖에 없다. 각 사회구성원들과 여러 사회 구성 집단들이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관용과 인정의 태도를 유지할 때에 다양성의 보장은 가능해지며 민주적 다원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인정이란 자신의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자신이 다른 사람의 관심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다.  헤겔에 따르면 인정의 과정은 투쟁, 그것도 생사를 건 투쟁이라고 하였다. 인정 투쟁의 절대적 전제는 타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타자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정의 문제는 인간이 문명과 사회를 이루어 함께 살게 되면서 등장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인정의 문제가 신분제 사회였던 전근대 사회에 비해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명예 혹은 존경 등의 인정의 형태는 귀족 같은 높은 지위의 사람들만 받은 권리였으나, 현대사회에서는 인정은 민주 시민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권리로 여겨지고 있으며, 구성원 개개인들은 각자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따라 정체성이 형성되기 때문에 인정의 양상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무엇보다도 상호 과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상호 인정의 기초 위에서 다원주의는 논의될 수 있다.

최근의 다원주의는 문화다원주의로 더 많이 논의되는데, 문화다원주의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다문화주의라고 한다. 현대사회의 복잡성의 증가로 단일하고 보편적인 기준으로의 정치적 요구를 넘어서 종교적 다원 현상도 보이고 있다.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가 상대적이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기본 명제를 전제로 하는데, 이는 정치적 다원주의가 국가의 위치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과 유사하다.

현대의 국가들은 대부분 다문화사회인데, 다문화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의 고유한 가치를 주목하고,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명예, 지위, 권리 등 모든 가치에 적용하여 사회구성원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인정하여야 한다.

근대에 들어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등이 주체적 자아로써 확립되기 시작하며 개인주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자아의 존재를 스스로의 이성적 사유로부터 찾고 있으며, 칸트는 인간의 행위를 종교적 명령으로 설명하지 않고 인간 존재 자체를 도덕적 행위 의지를 가진 도덕적 판단의 주체로 인정하며, 개인이 사회의 주체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홉스의 사상은 소유적 개인주의의 출발점으로써 소유적 개인주의는 근대 이후 정치철학의 중심에 소유권에 관한 쟁점이 자래매김할 수 있게 하였다. , 개인은 소유에 관하여 권리를 가지며, 그러한 권리는 자연상태에서의 평등함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홉스의 소유적 개인주의는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운영원리로 이어지며, 왕권 중심의 절대주의에서 벗어나는 논리를 마련한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사상으로 전개된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주의를 자유방임주의라고도 하였는데, 왕권중심의 절대주의에서 벗아나 국가가 경제에 간섭하지 않고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만을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어떠한 구속에도 놓이지 않는 상태로 개인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상태이다. 그러한 방임의 상태에 놓인 개인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방임주의의 기초는 다원주의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각 개인간의 이기심의 충돌은 강한 자의 의지에 따라 결론을 맺게 되는데,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메커니즘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그러한 개인간의 이기심이 해결될 것이라고 하였다.

전통적인 자유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데 비해, 공동체주의에서는 개인이 공동체 의존적인 강조하며, 개인과 사회의 간극을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공공의 목적이나 공동선에 의거하지 않는 정치체제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갖으며, 공적인 삶에 참여하지 않고는 자아를 형성할 수도 없다고 본다. 또한 어느 사회도 공유된 가치들의 합리적인 토대 없이는 활력을 유지조차 할 수 없으며, 개인의 흥미, 자율성, 보편성, 자연적 권리, 중립성보다는 사회적 관행과 전통의 집단적 연대, 사회적 책임 등에 관심을 갖는다.

이로인해 공동체주의 사상을 전체주의 사상과 동일시되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전체주의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사상으로 공동체주의와는 다르며, 공동체를 소중의 여기는 사상이지만, 공동체주의는 사회는 평등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점에는 전체주의와는 다르다.

개인의 자유를 근원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 전체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킨다면,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의해 주도되는 전체주의와 다를 바가 없는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사회주의권이 해체되면서 자본주의 체계는 자본주의 초기의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로 되돌아가려는 신자유주의 경향이 득세하였다. 자본주의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각과 의식적인 노력으로 사회적 연대와 합의를 창출하여, 공동체적인 존재로서 서로의 발전을 위해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평등하게 누리는 삶의 양식을 찾는 공동체주의적 사고가 필요하다.

 

13강 논리적 오류 대해 종류별로 핵심을 요약하여 서술

타인의 논리적 사고를 하지 못함을 쉽게 지적할 수 있지만, 자신의 비논리적 사고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논리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심리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와 심리가 충돌할 때 심리에 따른 선택을 하게 되는 유형을 논리적 오류 중 심리적 오류라고 한다.

이러한 심리적 오류의 종류에는 사람에 호소하는 오류,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 위협()에 호소하는 오류, 우물에 독 뿌리기 오류 등이 있다.

사람에 호소하는 오류에는 인신공격의 오류, 정황에 호소하는 오류,피장파장의 오류가 있다. 사람에 호소하는 오류는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논박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흠을 찾아 그 사람이 주장하는 논박하려고 할 때 빠지는 오류이다. 주장하려는 논박의 내용과 주장하는 사람을 구분하여야 하는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비판함으로써 주장에 대한 논박한 것으로 착오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함으로써 그 사람이 주장하고자 하는 주장의 내용조차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장에 대한 논박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주장에 대한 논박인 것 가은 착각을 하게 하는 오류이다.

그 상세한 오류의 유형으로는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인품, 직업, 성격, 과거의 행적 등에 따른 주장하는 사람의 부정적 특성을 근거로 주장의 내용을 논박하는 인신공격의 오류”, 주장을 하는 사람의 직책, 직위, 처지 등 그 사람이 처한 정황을 트집잡아 주장의 내용을 비판하는 정황에 호소하는 오류”, 상대방의 주장이 자신의 유죄를 지적할 때에 상대방도 같은 유죄 즉, 피장파장이라고 비난함으로써 논박하는 피장파장의 오류가 있다.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는 대중의 편견, 군중심리, 열광, 욕망에 직접적으로 호소하여 논증의 결론을 위한 승인을 얻음으로써,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할 때 빠지게 되는 오류이다. 예를 들면, 100만명의 고객이 선택한 제품이다라고 하였을 때, 100만명의 사람이 선택하였다고 해서 그 제품의 품질이 좋다거나 여러 가지로 우수한 제품이라는 사실과는 다를 수 있다. 단지 여러 사람이 선택했다는 것만을 근거로 우수한 제품이라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다른 사례로써, 소수만을 위한 제품이며 선택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 제품을 선택하라는 주장도, 소수만의 사람이 선택한 제품이라고 해서, 그 제품을 선택한 사람이 특별하다는 논리는 욕망에 호소하는 논리적 오류로 그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 합리적 이유가 되지 못한다.

위협()에 호소하는 오류는 상대방에게 결론을 제시하고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해를 가할 것이라는 등으로 위협하거나 위협을 암시할 경우에 생기는 논리적 오류이다. 예를 들면, 그 여자랑 만나지 말고 헤어지라고 주장하면 헤어지지 않을 경우에 용돈을 끊는다든지 상속을 하지 않겠다는 등의 협박을 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 그 여자를 만나지 말아야 하는 적절하고 논리적을 주장을 제시하지 않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 대한 손해를 입도록 하는 각오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그 남자는 올바른 논리적 판단을 하지 못할 수 있는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우물에 독 뿌리기 오류가 있다. 이는 어떤 논증에 대해 반론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자신의 논증을 옹호하려고 하는 오류이다. 우물에 독을 뿌리면 모두가 우물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을 우물에 독을 뿌리는 주장을 펼칠 수 없게 만드는 논리적 오류를 하게 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연봉협상을 하는 자리에서 일 못하는 직원들은 무턱대고 연봉을 올려달라고 투정된다고 사장이 먼저 말을 한다면, 연봉 협상에서 좀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싶은 직원을 연봉을 올려달라고 말한다면 마치 자신이 일을 못하는 직원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연봉을 올려달라는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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