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전체 소개
시나 소설, 그 밖의 다양한 형태의 글들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 글의 작가가 살았던 시기의 사회의 모습을 알아야 함은 당연한 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집의 지은이인 조세희 작가가 활동했던 그리고 이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발행되었던 1970년대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급변했던 시기였음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만 한다. 
요즘의  풍요 속에서 부족함이 없이 태어나고 자라고 있는 MZ세대들은 부모님 세대의 꼰대스러운 옛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옛 드라마나 영화속의 특별한 이야기이겠거니 하겠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은 불과 몇 십 년 전의에 우리 사회에 흔했던 이야기들이다.
더 이상 갈 곳도 없는 달동네 주민들의 철거민으로 내몰린 애달픈 사연들, 눈이 부시도록 졸리지만 밤새도록 숱한 야근을 하며 살아왔던 그 시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 시절의 모습을 너무나도 자세하게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작가 자신이 철거민이 되어 갈 곳을 잃어버렸던 사람처럼, 마치 기계소리가 쩌렁쩌렁한 공장에서 밤새도록 야근에 시달리다 지쳐서 퇴근함을 수 없이 반복했었던 사람처럼.
그래서 이 소설집에 나오는 장면의 하나 하나가 그 시절의 모습을, 저녁 TV뉴스에서 보는 것 같은, 요즘의  MZ세대들은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사실감과 현장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작가가 이 소설집 서문의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발행되었던 칠십년대는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 폭압의 시대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적 진실이 되어 있다. 작가는 그 시절의 유신헌법과 군부의 억압 독재의 시대가 아니었다면 이 소설이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사회적 반항이었고,  고발이었을 것이다. 그 이전 과거의 시대에도 항상 그러한 소설과 글들은 존재했지만,  칠십년대 사회의 서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사실감있게 표현한 소설이기 때문에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 같다.

연작 중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대한 상세 분석과 감상평
이 소설집의 연작 중 나는 제목과 동일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가장 먼저 읽었다. 그리고, 제목 중에서 눈에 먼저 띄는 연작들을 읽어 나갔다. “뫼비우스의 띠”,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 소설책 전체를 읽지는 못했지만, 내가 읽은 이 소설의 연작 중에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외치고 싶었던 부르짖음에 대한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연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을 읽다가 갑자기 헷갈렸던 점은 어느 순간 말하는 화자인 주인공이 바뀌었던 점이다. 처음에는 삼남매중에서 장남인 영수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두 동생인 영호와 영희의 이름만 알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둘째인 영호가 주인공이었다가 나중에는 막내 여동생인 영희가 주인공으로 바뀌게 되면서 주인공이 바뀌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유형은 최근에 유행했던 TV드라마나 옵니버스 소설, 옵니버스 영화라는 분야에서 들어본 형식인 듯 했다. 같은 사건을 누구의 시각과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가치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는 영수든 영호든 영희든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좀 더 나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 찾아가지를 못하고 있다. 그나마 막내인 영희가 비참한 상황을 견뎌내며 부동산업자로부터 서류를 훔쳐내었으나 이미 난장이인 아버지는 죽은 뒤였느니 결국에는 비참한 현실은 극복되지 못한 채로 남게 된다.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삼남매의 어머니와 난장이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말했다.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집에 살 수 있고, 고기도 날마다 먹을 수 있단다.”
“거짓말!”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면서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나쁜 사람야. ”
어머니가 우뚝 섰다.
“너 방금 뭐라고 했니?”
“우리 아버지는 나쁜 사람야.”
“너 매 좀 맞아야겠구나. 아버지는 좋은 분이다.”

어머니와 영수의 대화에서 그 모습은 우리 시대의 모든 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배워야 한다는 믿음, 남편이면서 아이들의 아버지의 위상은 어떤 일이 있어서 지켜져야 한다는 신념, 그러한 믿음과 신념으로 가정을 지키고 이끌어온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노예제도의 시대에서 대대손손 노비의 후손이었던 난장이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조상들은 노예제도의 폐지 이후에도 최하층인 천인의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그들의 자식인 삼남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연작 중에서 3장부분을 읽기 전까지 화자인 주인공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오히려 혹시 작가가 주인공을 처음에는 장남인 영수로 했다는 걸 잊어버려서 갑자기 영호로 바꾼 건 아닌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3장부분에서 또다시 주인공이 바뀌어 영희가 되었다는 걸 알고 나서야 일부러 이렇게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삼남매가 각각 바라보는 관점과 현실도피, 또는 현실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2장에서 갑자기 가출해 버린 영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희는 왜 가출을 한 것일까? 혹시 남자들에 비해 연약하다고 여겨지는 여자아이 그것도 한창 사춘기 소녀인 영희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이라도 끊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희는 그들의 엄마만큼 강했다. 잔인하리 만큼 강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타파해나갈 방법을 찾아나선 것일지도 모른다. 
영희가 자신의 집을 산 부동산업자와 함께 간 사실이 너무 슬펐다. 영희는 어린 나이에 엄청난 자기 결정을 한 것이다. 오직 가족을 위해서.. 이런 영희의 모습은 그때 그 시절을 살았던 엄마들의 모습, 누나들의 다양한 모습들 중에 하나였다. 옆집 명희가 다방 종업원이 되고, 골프장 캐디가 되고, 고속버스 안내양이었던 것처럼, 영희도 어린 나이에 부동산업자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철거계고장과 표찰을 훔치는  강력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어린 영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은 그 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난장이”이라고하면 서커스단에서 재주를 부리는 삐에로 분장의 배우를 생각하게 되지만,  이 소설의 연작 중 소설책 제목과 같은 연작만 읽어봐도 그러한 아이들 동화 같은 상상은 사라지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그 가난마저 극복할 힘과 능력도 없는 그래서 그들의 미래까지도 암울한 비참한 현실 속의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는 단어로 작가는 “난장이”를 선택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철거민의 삶이 힘든 이유는 보상금을 받아도 그 보상으로 발 뻗고 쉴 다른 이주할 곳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세울 만한 학력은 커녕 제대로 된 기술도 없으니 단순 노무로 생계를 유지하고, 공장에 나가서도 단순 업무만하고 있으니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하지 못하는 현실에 쫓기며 살아가는 삶을 난장이와 그의 가족들로 상징적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 어려웠던 시절을 굳건히 버티고 견뎌온 난장이의 가족이 실존이라면 2022년인 지금쯤이면 분명 크고 넓은 아파트에서 그 시절보다는 편안히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을 힘겹게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은 상대적으로 많이 풍족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평균적인 사람들의 일반화일 뿐이지, 모든 사회 속에는 들어나지 않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 그 시절보다는 평균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조세희 작가가 우려하고 바뀌어지길 바랬던 그런 사회는 아직도 좋아지지 않은 채로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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