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국일보>
한국 전쟁 직후 서울을 방문한
더글라스 맥아더
"이 나라를 복구하는 데는 최소 100년이 걸릴 것이다"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한국전쟁으로 인해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었던 사람.
400만여명
2008년 현재
강원도, 충청북도, 제주도 사람을 모두 합치고도 50만명이 남는 수.
<어머니가 죽은 줄 모르고 붙어 있는 아이 /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다시는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아내
20만명
네이팜탄에 찢겨나간 어머니의 얼굴,
삼일째 흔들어도 깨지 않는 아버지를 둔 아이,
10만명
공업시설 : 43% 파괴
발전시설 : 41% 파괴
탄광시설 : 50% 파괴
<1959 부산항 부두 / 출처 : 최민식 작가>
세계언론 특파원들이
자국으로 보내는 기사에 결코 빠트리지 않았던 두 문장.
이 나라엔 희망이 없다.
이 나라엔 내일이 없다.
<1950 서울 용산역 부두 / 출처 : 최민식 작가>
아이들은 구걸하고
<1951.수원. 네이팜탄에 맞은 어머니들 /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어른들은 병들었다.
<집단 학살된 사람들 / 출처 : 연합뉴스>
아니, 죽어 있다.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미국 독일 아랍제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델란드 호주 덴마크 벨기에 영국 캐나다
스웨덴 이태리 노르웨이 스위스 뉴질랜드
핀란드 스페인 룩셈부르크 그리스 포르투갈 폴란드
그 외
기타 무수한 국가
및
유엔단체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우리는
한국에 유,무상 원조를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향후 100년이내에 원조액을 돌려 받지 못할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정확히 37년 8개월 5일 후
세계 곳곳에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프가니스탄 파르완주 재건사업 / 출처 : 코이카>
아프가니스탄의 한 아이가 태극마크가 달린
가방을 들고 학교에 나타났다.
<방글라데시아 / 출처 : 코이카>
오른쪽 어깨에 태극마크를 단 동양인들이
방글라데시아에 나타났다.
그리고
죽어가던 우리 언니를 살려 냈다.
<에티오피아 / 출처 : 코이카>
에티오피아에서도
<스리랑카 / 출처 : 코이카>
스리랑카에서도 그랬다.
<태국 지진해일 긴급구호 봉사단 / 출처 : 코이카>
태국에 해일이 몰아 닥쳤다.
어머니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몇일을 울고만 지냈는데
어느날
태극마크를 단 남자의 손을 잡고 어머니가 돌아왔다.
그날 밤,
신에게 평생 그 나라의 축복을 빌 것을 약속했다.
<페루 봉사단 / 출처 : 코이카>
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한다.
엊그저께는 들판으로 나가 무등을 태워주며
'사랑한다'
는 한국말을 가르쳐 주었다.
<탄자니아 농기계 지원 / 출처 : 코이카>
힘든 농사일과 겹친 가뭄으로
항상 한숨만 쉬던 아버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농기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에티오피아 네오 칠드런 센터 급식사업 / 출처 : 코이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한 아이가
놀랍게도 태극기를 그려 교실에 붙였다.
아직은 복잡해서 잘 외울 수도 없고
서툰 솜씨지만
이 나라 때문에 점심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네오 칠드런 센터 급식사업 / 출처 : 코이카>
58년전.
에티오피아는 흑인국가로는 유일하게 한국전에 군대를 파견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조그만 나라의 자유를 위해
무려 3518명이라는 군인을 파견했고
그들의 소중한 아버지이자 아들
657명이 이 땅에 뼈를 묻었다.
참전 이후 에티오피아에는 공산정권이 들어섰고
참전용사들은 단지 공산국가와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연금이 끊기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전쟁 때 팔 다리,
아버지, 아들을 잃은 고통도 모자라
아직도 그들은 죄인처럼 살고 있다.
그런데
일전에 방송에 나온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인터뷰에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비록 온 몸에 총탄이 박히고 팔, 다리를 잃었지만
자유를 위해 싸운 자부심으로 한 평생 살아왔습니다.
가난과 고통, 멸시가 대물림 되어
자식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고 있지만
한국이 발전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흐뭇합니다."
그는 아직도 참전당시의 태극기를 고이 보관하며
날마다 태극기를 게양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잘 살게 되었지만
우리를 도운 그들은 아직도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도울 때다.
대한민국의 기적은 그들과 함께 잘 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는
'함께 잘 사는 인류사회 건설'이라는 모토아래 1991년 4월에 설립되었다.
주요활동으로 전문가, 의사, IT, 태권도, 지역개발 등의 전문인력 및 해외봉사단 파견,
국제협력요원을 포함한 연수생 초청사업, 아프가니스탄 지원사업등이 있다.
코이카 설립은
대한민국이 더 이상 다른 나라의 도움만을 받는 나라가 아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현재 코이카는
40개국 사무소에서 1700여명이 어려운 환경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KOV 이유행님 싸이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