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

My Life/2022년 2022. 4. 30. 16:06

한시간

아침에
눈을 뜨고 똥을 싸고 이빨닦고 샤워하고 옷입고 출근하러 집을 나서는데..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타고 어제 어디까지 일했는지 기억을 더듬고 오늘 할일을 계획하고 요이땅 시작하는데...

젊음을 허투로 보낸 후회로 집근처 도서관에 찾아갔지만 몰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이 모든 것들이 걸리는 데 필요한 시간.
한시간...

위대한 인생은
한시간의 작은 시간관리로부터 시작된다던데..

아하..
그것때문이구나..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젊었을때의 노력과
그 노력의 결과물로
중년이후의 삶이
누려진다는걸..

중년이 훨씬 지나서야
깨달았지만..

이미 내 청춘은
기억도 안나리만큼 흘러간 뒤였다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더러운 손으로
눈꼽 떼고 눈 비비던
세 살 버릇이
손톱에 발톱 무좀이 옮은 뒤로
오십살에 멈추더라.

세살 버릇 여든까지 때른 안간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모나리자.

My Life/2022년 2022. 4. 22. 08:55

제목 : 모나리자

백색증..
파란눈..
하얀 피부..
눈썹이 없이 태어난 아이.

자라면서 이국적 외모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

그녀는
시인이 되고싶었다

그녀는 그녀의 이야기를 시로 썼다.
(이 이야기의 매 챕터는 그녀의 삶의 시로 시작한다.)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여인 모나리자..
그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게된다.

그녀는..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로부터 전해진..
하멜의 후손이었던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 소설 써 볼까..
생각만하는중..헤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애국가 외우려고
굴렸던 노하우(?)도 생각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제일 처음 먼저 생기고
우리나라가 생겼으니까, 1절..

"남산"은 두 글자라서, 2절..

봄 여름 가을 겨울..
가을은 세번째 계절이라서, 3절..

어린아이의 이 늠름한 기상으로..
4절까지 왔노라!!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알고싶어요.

My Life/2022년 2022. 4. 22. 04:02

평생 잊혀지지 않는것들..

- 이이는사 이삼육 이사팔.. 구구팔십일.
(구구단)

- 동해물과 백두산이..남산위에 저 소나무.. 가을하늘 공활한데..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애국가)

-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사명을 띠고.. 새 역사를 창조하자.
(국민교육헌장)

-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
(조선시대 왕이름)

- 은주춘추전국진한삼국위진남북조수당오대십국송원명청.
(중국 나라 이름)

-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고이 보내드리우리다(마야의 진달래꽃 X, 김소월의 진달래꽃 O)

- 검갈빨오노녹파보회흰.
(전기저항값 색깔)

- 아이마이미마인,쉬허허허즈, 파이는 3.141592, 2 파이는 360도, sin 30은 2분의 1, V는 IR(오옴의 법칙) ..

- 9000939(학번), 94-11089(군번), 700xxx-x167xxx(주민번)


지금도 모르겠는것들..

- 우리집 도로명 집주소
- 마누라 생일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과제 1) 만세전3(교재 수록 부분) 말미에 주인공(화자, 이 인화)이 눈물을 흘리는 까닭을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생각하여 서술하시오.

주인공 이인화는 궁핍하지 않은 오히려 풍족한 삶을 살아온 부잣집 도련님으로 일제의 강제점령 시절에서조차도 부족하지 않은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고, 식민지하의 정치적 어려움조차도 모르는 집안에서 살아왔다.

그런 이인화는 평상시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괜한 의심과 검열과 감시와 멸시를 받아오면서도 그저 귀찮은 정도의 느낌을 받으며 살아왔었지만, 아내의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동경에서 서울로 가는 여정에서 받은 사건들과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생각과 멸시를, 일본인의 행동과 대화에서 자신과 같은 부류인 조선인들의 궁핍한 삶에 대한 현실을 들으며 자신에 대한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들은 아직 한반도에 들어서기도 전인 동경에서 서울로 가는 여정의 이제 겨우 절반인 관부선의 선상이었으니, 관부선 안의 목욕탕에서 들은 일본인들의 대화에서 조선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그 믿겨지지 않은 조선인들의 삶에 대한 모습에 자신의 겉모습은 그러하지 않지만 같은 조선인으로 같은 처지의 인간으로 바라보여지는 것에 대한 모멸감도 느꼈을 것이다.

이인화 같은 부족함이 없이 살아온 지식계층이자 상류계층의 입장에서는 일반 평범한 조선인이나 하층 계층과 같은 조선인으로 분류되는 것이 기분 나쁜 상황일 것이다. 오히려 이인화 같은 조선의 경제적 정치적으로 상유계층인 부류들은 식민 지배를 하고 있는 일본의 평범한 서민 계층보다도 더 우수한 계층이라는 인식도 하고 있을만한데, 외모적으로는 구분하기도 어려운데, 단지 민족적 출신만으로 정신적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 너무 억울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자신은 집에서 보내준 돈으로 세상에 대한 큰 불만과 어려움 없이 살고 있었는데, 사랑도 없이 결혼한 정력적 조혼의 과정에서 얻게 된 아내의 위독하다는 소식은 혼자였더라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귀찮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가지 않으려니 조선의 지식인계층 상류계층의 한 사람으로써 가지 않는다는 보통 조선인스러울테고, 그 먼 길을 가지 않으려니 한 여자의 남편 노릇이라도 하는 척을 하려니 귀찮을텐데, 자신의 이중적인 생각에서 자신의 의지와 노력과는 다른 이런 상황이 된 것에 대한 하늘과 조상에 대한 억울한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자신은 대만의 야만족인 생번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 조선의 일반 사람들과는 댜른 삶을 살고 있었는데 자신이 부산으로 가는 선상의 목욕탕 안에서 일본인들의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에서는 느끼거나 본적이 없는 일반 조선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니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도 같은 부류로 인식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탕속에서는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은 체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일본인인척하는 조선인 순사가 자신을 찾아오고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고 조선인이라는 것이 탄로가 나게 되서 부끄러웠을 것이다. 이러한 엉망진창이 상황속에서 있는 자신이 서글프고 괴롭고 답답한 마음 때문에 저절로 눈물을 흘리게 되었을 것이다.

 

(과제 2) 만세전에 대한 감상문을 제출하시오.

만세전. 이 소설의 내용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한자로 표기되지 않은 제목만 봤을 때에는 오래오래 살아가는 어느 누군가의 또는 어느 가문이나 나라 또는 민족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작가는 왜 만세전이라고 제목을 정했을까. 경제적 정치적인 어려움없이 살아가던 상류층 집안의 도련님조차도 일본인들로부터 멸시를 받으며,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차별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게 된 결과로써 3,1만세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 작가든지 작가가 쓰는 글의 시대적 배경이 작가가 살고 있는 시대라면 그 글은 그 시대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며, 직접 겪었거나 주변의 지인들, 친인척의 모습이 소설이라는 장르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만세전에서 나타난 생활상도 지금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거나 역사적 사료 등의 증거들로부터 알 수 있는 내용들이 표현되고 있다.

주인공 이인화의 생각의 표현이 아닌 이인화의 생활과 동경에서 서울로 오는 여정에서 보고 듣는 생활상은 그 시대 일제 식민지 시대의 모습이 표현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세전에서 묘사되고 있는 내용들처럼, 돈 있는 집안의 자제들은 일본 유학을 유행처럼 갔을 것이고, 남녀의 만남에서는 사랑보다는 집안끼리의 정략적 조혼의 풍습이 여전히 남아있었을 것이고, 일본인처럼 행세하며 일본인으로 인식되고 싶어하던 수 많은 조선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인화가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어오기 위해 이용했던 역사적 자료로도 충분이 있는 시모노세끼와 부산간의 왕복선도 이 소설에서는 묘사되고 있으니, 단지 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허무맹랑한 지어낸 이야기들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역사적 사료들로 받아들여야 하는 내용들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된다.

특히 관부선내 목욕탕에서 일본들간의 대화에서 일본인들이 바라보던 조선에 대한 시각과 조선들을 현혹하여 일본의 광산 등으로 알선하던 브로커들의 모습은 피해자나 가해자들로부터 충분한 자료들을 모을 수 없을텐데 소설이라는 장르인 덕분에 그 당시의 상황을 매우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증거라료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소설은 픽션 지어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그당시의 일본에 의한 검열시 충분히 빠져 나올 수 있는 핑계를 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세전은 그 당시의 사회상을 그린 단순한 소설로 치부하기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남긴 역사적 사료로써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세전은 이 소설의 제목에서 느낄 수 있었던 3.1만세운동이 있기 전에 있었던 어느 부잣집 도련님의 심경의 변화와 조선의 궁핍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지식인으로써 또 정치적 상류계층으로써 어떠한 인식 변화와 행동을 해야하는 지에 대한 근원적 계몽소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며 작가로써의 사명감을 피력하고 했던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로서, 글로써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교과목명 구비문학의 세계
학 과 영어영문과/국어국문과(복수전공)
성 명 황상규
과제명 한국신화의 특징에 관하여 설명하시오.(15)
❷ 교재에 제시된 <천자(天子)전설>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그 의미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시오.(15)
지시사항 - 반드시 아래한글과 MS word로 작성하여 제출. ※ PDF 제출 불가.
- 글자 크기 11, 줄간격 180. 각 항목 당 A4 1.5매 이상으로 작성할 것.
(표지 제외)
- 강의와 교재를 활용하여 답안을 작성할 수 있으나,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자신의 문장으로 다시 정리하여 작성할 것. 교재와 강의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 표절 처리함.
- 상업자료 및 학생 상호간 표절의 정도에 따라 감점 처리하되, 표절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0점 처리함.
- 인용한 책 혹은 논문에 대하여 각주의 형식에 맞게 제시할 것.
- 분량 미달시 그 정도에 따라 감점 처리함

 

1.  한국신화의 특징에 관하여 설명하시오.

한국의 건국 신화에는 북방지역의 신화로 단군신화, 주몽신화와 부여국과 관련된 해모수신화와 해부루신화, 금와신화 등이 있고, 남방지역의 신화로는 박혁거세신화와 김수로왕신화, 석탈해신화, 김알지신화, 제주도의 삼성신화 등이 있다.

단군신화와 주몽신화는 3대기에 관한 신화이다. 단군신화는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고, 주몽신화는 천제-해모수-주몽으로 이어진다. 각 신화의 1대인 환인과 천제는 하늘에 살고 있으며, 2대인 환웅과 해모수는 하늘에서 살다가 땅으로 내려와 각각 웅녀와 유화와 결혼하여 단군과 주몽을 낳는다.  신화의 3대째인 단군과 주몽은 신화의 주인공으로써 하늘에 살고 있지는 않는 역사의 시간 속에 살며 수명을 지닌다

하늘에 사는 환인과 천제의 손자로써, 신화의 주인공인 단군과 주몽이 태어나면서부터는 환인과 천제는 더 이상 신화에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천상의 것보다는 지상의 것이, 초월적인 시간보다는 역사적인 시간이, 수직적인 질서보다는 수평적인 질서가 중요하다는 사상을 나타내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에 비해 다른 건국 신화에서는 3대에 걸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건국신화의 주인공은 신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영웅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누구나 할 수 없는 일들을 수행해냄으로 신성시된다. 이러한 한국의 건국신화에서는 중국과는 달리 투쟁이 중요시되고 서구와는 달리 모든 싸움이 끝나고 승리자가 된 후에 다시 비장한 패배를 한다는 전개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신화들에서는 북방지역과 남방지역에 따른 결혼과 탄생의 전개 방식, 신화의 주인공이 건국의 주인공으로써 즉위하는 과정과 주인공의 사후 결말에서 공통점과 차이점들이 나타나는데, 북방지역의 신화에서는 신화의 주인공 출생 이전에 시조의 조부와 부모가 등장하며, 부모의 결혼으로 주인공이 탄생하는 전개 방식을 보이는데, 남방지역에서는 신화의 주인공인 건국 시조의 부모는 등장하지 않으며, 시조의 기이한 탄생과정이 기술되고 이어서 시조의 즉위와 결혼이 전개된다.

이러한 시조의 결혼과 탄생의 전개방식의 차이점은 북방지역에서는 시조 이전에 국가에 준하는 사회가 구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시조가 새로운 국가를 창립하고 국력을 확장하고 문물을 발전시킨 군주이지만 최초의 군주라고 할 수는 없는데, 남방지역의 신화에서는 아직 국가로써의 체계를 갖추지 못한 사회에서 씨족사회의 촌장들에 의해 추대되어 국가의 기틀을 처음으로 마련하고 건립한 인물로써 시조가 설명되고 있다.

즉위과정에서는 북방지역의 신화에서는 전대 왕을 계승하거나 분열하여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스스로 왕위를 쟁취하지만, 남방지역의 신화에서는 아직 국가로써의 기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는 촌장들의 합의와 추대로 시조가 즉위하는 과정이 기술되고 있다. 북방지역에서는 강력한 통치력을 앞세운 즉위에 비해 남방지역에서는 부족장의 합의를 내세움으로써 무력으로 통합하지 않고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한 신성한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차이점이 있다.

신화의 주인공인 시조의 사후 이적은 신성성을 획득하여 신으로 숭상되는데, 단군신화에서 단군은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된다. 이는 천상에서 내려와 도달하는 높은 곳인 산의 신이 되어 본래 단군의 속성은 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주몽도 통치한 후 19년만에 하늘로 승천하였는데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같이 천신으로써 숭앙됨을 알 수 있다.

남방지역의 신화에서도 시조의 최후는 신비롭게 나타나는데 혁거세는 승천했다가 칠일 후에 유체가 지상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곡식의 낱알이 지상에 흩뿌려져서 다시 새로운 싹으로 태어남을 상징한다. 수로 신화에서도 수로 사후에 수로와의 제일이 3월에 시작해서 8월에 끝나는데, 이는 수로가 농경생활과 관련있는 여름의 신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남방지역의 시조신은 농경의 신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제주도의 삼을나전승은 건국신화적 요소는 찾아보기 어렵고 태초에 3명의 신으로서 고, , 부의 구체적인 성씨의 시조가 나타난다. 제주 지역에는 청동기 문화의 유입없이 곧바로 철기문화 그것도 한식철기문화가 유입되었는데 이러한 여러 사료들로 보면 탐라는 철기문화의 꽃읗 피웠던 고구랴 계통의 집단이 입도하여 세력을 형성하였다고 판단된다.

 

2. 교재에 제시된 <천자(天子)전설>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그 의미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시오.

한반도에서 전승되는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을 말하는 명태조 전설에는 웅천의 천자봉 전설, 웅천의 천자바위 전설, 천자혈 전설, 수중명당과 주천자 등이 있다.

웅천의 천자봉 전설은 경상남도 웅천고을 웅산 기슭에 주가라는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도승이 늙은이 내외에게 귀공가가 세상에 나올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부인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름을 주원장이라고 하였다. 이 아이가 다섯 살에 예전의 그 도승이 찾아와 데려갔는데, 이 아이가 열다섯에 군대의 장수가 되고 명나라의 태조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웅천의 천자바위 전설은 옛날 함경도 어느 곳에 이씨라고 하는 풍수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자 명당을 골라 전국을 다니다가 경상도 웅천 바닷가에 이르러 명당을 발견하였는데, 바닷가 바위 밑에 있어서 묘를 쓸 수 없었는데, 근처에서 놀던 아이의 도움을 명달을 쓸 수 있게 되어 그 아이의 아버지 해골도 같이 명당에 같이 넣었다. 후에 그 풍수장이가 낳은 아들은 이씨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되었고, 바닷가 명당근처에서 놀던 아이는 중원으로 들어가서 명나라를 일으켜 명태조 주원장이 되었다.

천자혈 전설은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가 부친의 명당자리를 찾아 조선팔도를 다니다가 웅천 천자봉이라는 산에 이르렀는데 바다 밑에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는데, 주걸웅이라는 잠박질을 잘하는 총각에 부탁하여 바다밑에 명당을 쓰려고 했다. 주걸웅의 아버지의 뼈와 이성계의 아버지의 뼈를 바다밑 미륵의 양귀에 걸었다. 이성계는 천자가 되고 싶어 주걸웅과 같이 대국에 들어갔는데, 이성계는 조선의 왕이 되었고, 주걸웅은 중원으로 들어가서 대국천자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수중명당과 주천자 전설은 서울에 살던 남매가 마산 돌섬으로 내려왔는데, 밤에 여동생과 몰래 자고 가는 자를 죽였는데, 여동생은 그 후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는 열일곱살이 되어 만주에서 천자를 뽑는다는 소문을 듣고 가서 천자가 되었다.

청태조 노라치 전설은 함경북도 회령과 경원에서 채록된 전설이 있는데, 함경북도 회령의 전설에서는 회령 서쪽으로 15리 밖에 현무암이란 동네가 있는데, 그곳은 오지암, 오제암이라고 하여 청나라 태조의 발상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이 좌수라고 하는 토호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외동딸에게 밤마다 찾아와 가고 가는 자가 있었는데, 그 발목에 실을 메어두게 하여 죽였으며, 그 딸은 그 후에 아들을 낳아 이름을 노라치라고 하였다. 노라치는 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셋째 아들이 비범하여 청의 개국 시조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한천자 전설은 강원도 춘성군에서 전승되는 전설의 주인공인데, 역사적 인물이라기보다는 전설적 인물로서 한천자가 다스린 실제 왕조는 밝혀져 있지 않다.

한반도에서 전승되는 이러한 천자전설들은 밤에 오는 자에 대한 설화를 담고 있는 야래자설화를 수용하고 있으며, 천자로의 발신과정에서는 천자명당전설을 수용하고 있다.

원래 한반도에서는 천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을 통치하는 천자가 태어날 수도 있을 수도 없는데, 이러한 천자전설이 전승되고 있다는 것은 과거 한반도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으로 볼 수 있는 산수풍경이 화려한 곳이 많이 있다는 민족적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중국의 천자가 한반도의 어느 마을에서 태어났을 리 만무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중국의 천자가 한반도에서 태어나 성장 후에 중국으로 가서 천자가 되었다는 전설로 전승되고 있다는 것은 한반도에 중국의 개국시조 천자인 명나라의 주원장이나 청나라의 누루하치에 버금가는 뛰어난 인물들이 한반도에서도 태어나고 성장했었다는 민족적 지역적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천자전설에서 나타나는 풍수지리적 이야기에서는 더 큰 인물이 태어날 명당의 후손은 중국의 천자로 성장하고 상대적으로 작은 인물이 태어날 명당의 후손은 한반도의 왕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전승되는 사실은 중국을 대국으로 섬겼던 과거 한반도의 지정학적 역사적 현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교과목명 소설창작론
학 과 영어영문과/국어국문과(복수전공)
성 명 황상규
과제명 본인의 가족을 포함하여 주변에서 가족관계의 문제나 세대 간의 갈등 사례를 수집한 후, 이를 다음의 조건에 따라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하시오.(30)
이야기의 의도를 담은 창의적인 제목을 붙인다.
갈등은 세대의 특징이나 가치관을 대표하는 인물 간의 대립으로 보여준다.
인물의 생각과 태도, 대립을 보여주는 사건을 구성하여 배치한다.
각 인물의 정보와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서술방식을 활용한다.(인물의 특징에 대한 묘사와 서술, 직업 혹은 사회적 역할 및 관계, 인물의 과거사 요약, 가족관계에 대한 스케치 등)
⑤ 1인칭 관찰적 서술자를 내세워 서술하고, 어조와 문체가 통일성을 갖추도록 유의한다.
지시사항 - 답안 작성 시 과제명을 제외하고 문항 번호와 답안만 작성할 것
- 과제명 및 평가 관련 문의처: 국어국문학과
- 아래아한글 혹은 MS-word로 작성할 것
- 분량 : A4 기준 4-5(공백포함 5000~ 7000)
- 서론-본론-결론’과 같은 목차는 불필요함.
- 타인의 이야기를 무단으로 옮기거나 타인의 과제, 상업 자료를 표절할 시에는 감점되거나 0점 처리될 수 있음.
- 글쓰기의 기본요건과 과제의 조건을 제대로 충족시킬 것.

 

제목 : 엄마

1940. 만주. 헤이룽. 엄마는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엄마의 기억이 그러하고, 그 당시의 엄마는 어린 아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 시절의 엄마의 만주살이 이야기를 지금도 가끔 들려주고 있으니, 엄마는 만주벌판 태생이 틀림 없어 보인다. 내가 열다섯 무렵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엄마의 만주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적어 가끔은 아쉽기도 하다.

엄마는 흑룡강성 태생이다. 엄마는 헤이룽이라고만 알고 있고, 정확한 위치도 알지 못한 체 만주라고만 말한다. 뉴스 매체 등에서 조선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동북3성 중의 하나이고 만주벌판 북쪽 끝에 위치한 곳이 흑룡강성이다.  그곳에서 경기도 양평의 몇남 몇녀 중의 장남인 외할아버지가 사업을 위해 먼저 가서 살고 계셨고, 강원도 영월의 김진사댁 몇남 몇녀중의 장녀였던 외할머니는 그 먼곳 만주로 시집을 가셨다고 했다. 그 먼곳으로 핸드폰도 없이 내비게이션도 없이 어떻게 찾아갔을까 놀랍고 굉장한 일을 외할머니는 해내셨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만주에서 어떤 사업을 하고 계셨는지는 엄마도 알고 있지 않지만, (외할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물어봤겠지만) 어린 엄마의 기억에 외할아버지는 트럭 몇 대를 소유하고 있었고, 집안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겨울이면 도축한 돼지를 통째로 처마에 메달아 놓고는 필요할 때마다 기다란 칼로 쓱쓱 베어내며 음식재료로 사용하곤 했었다고 한다. 장남이었던 외할아버지는 경기도 양평에 살고 있던 친척들을 만주로 불러 같이 사업을 했고, 엄마의 몇째 작은 아버지는 만주에서 보내준 돈으로 고향에 땅도 사고 산도 사고 집도 샀다고 했다.

그러던 중 모든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광복을 맞았는데, 그 무렵에 엄마는 직접 보지는 않았겠지만(분명히 외할머니한테 전해 들었을 테지만) 외할아버지는 같이 일하던 중국인 직원에게 총을 맞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엄마는 일제 강점기의 그 혹독했던 일제의 만행을 겪는 대신에 중국인에 의한 아버지를 여읜 소녀가 되었고, 일본인보다 중국인을 더 혐오하는 반공주의의 첫 걸음을 떼기 시작한 된 듯 하다.

광복을 맞았지만, 만주에서 서울로 다시 들어오던 엄마의 가족들은 남편없고 아버지 없는 가난한 한 가정 일뿐이었다. 엄마의 작은 아버지들은 외할아버지의 재난을 멋대로 나누었고 그 동안 만주에서 고향 땅으로 보낸 돈은 엄마의 몇째 작은 아버지의 것이 되어있었다고 했다.

엄마의 기억에 만주에서 서울로 오는 여정은 기차이야기만 남아있다. 꽉꽉 들어찬 서울행 기차에서 이제 겨우 서너 살도 안된 동생 몇몇을 홍역과 폐렴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서울에 도착했으니, 어린 엄마의 마음보다 대여섯 자식 중에 겨우 두 명 만을 남기고 모두 가슴에 묻어버린 외할머니의 슬픔이야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외할머니는 남편을 잃고, 재산도 잃고 자식도 잃고 낯선 땅 서울에서 광복을 찾아 돌아 왔지만, 광복하지 않은 삶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이야기에는 외할아버지가 다시 등장한다. 우체국에 근무하는 체신부 공무원에게 외할머니가 살아남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안고 재혼을 했던 것이다. 엄마의 이야기에 따르면 외할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외할아버지의 집안에서는 같은 집안 사람이 아닌 것으로 되어버렸고, 재산을 가로 챈 엄마의 작은 아버지들로서는 가로 챈 재산을 더 이상 나누지 않아도 될 명분마저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돌아가신 후에서야 다시 만주벌판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엄마의 아빠, 나의 외할아버지의 곁에 함께 묻힐 수 있었다.

엄마는 스스로 엄마의 어린 시절을 말할 때 억척같았었다라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 김진사댁 딸로 곱게 자라고, 만주벌판에서도 떵떵거리고 살았다던 외할머니에 대한 엄마의 판단은 이 험한 세상에 곱게는 살지언정 힘차게 살아가기는 어려운 스타일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해서 서울에서 부산 영도로 피난을 갔을 때에도 이제 열살 짜리 소녀였던 엄마는 화재로 전소된 곳에서 땔감거리를 주워와서 외할머니를 놀라게도 또 기쁘게도 했다고 했다.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를 5학년까지 다녔던 엄마는 동네 또래들의 여자중학교 교복이 그렇게 입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의 새 아빠는 여자의 공부를 바라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옷감 만드는 공장의 똑순이로 청춘을 시작하게 되었다. 의지할 친아버지는 중국사람의 총을 맞고 돌아가셨고, 엄마의 작은 아버지들은 엄마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은혜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엄마의 엄마는 험한 세상을 스스로 극복해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곱순이였으니, 그 당시 유행했던 어느 기독교 종파의 부흥집회는 의지할 데 없는 엄마의 답답한 가슴을 채워주고도 남았으리라.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힘들어하는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아서였을까, 아니면, 인생의 기억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일제강점기로부터의 해방과 무시무시한 한국전쟁의 공포와 분단의 슬픔을 보았기 때문이었는지, 엄마는 스물 일곱살, 그 때 당시만해도 엄청난 노처녀의 나이가 되었을 때까지도 시집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는 덜하겠지만, 결혼을 통해 현실로부터 탈피를 꿈꾸고 새로운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으로 결혼을 하는 경우가 예전에는 많았던 것 같다. 엄마는 스물살 무렵부터 다녔던 그 교회(이미 수십년전에 한국 기독교 교단에서는 사이비로 지정된 바 있다)로부터 답답한 삶에 대한 해소가 완전히 되지 않았었는지 어느 날 내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했다. 언제인가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빠는 어떻게 만났어?

엄마와 아빠는 여섯 살 나이 차이가 난다. 엄마 나이가 스물 일곱살이었고, 아빠 나이가 서른 세살이었으니, 그 때 당시의 처녀 총각의 나이로는 늙을 대로 늙은 보물급 처녀 총각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엄마가 다니고 있던 공장의 누군가로부터 소개받았다고 했다. 대부분의 남녀간의 만남에서 그러하듯이 엄마도 아빠가 맘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집에 찾아와서 외할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 딸을 달라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의 험난한 두번째 인생이.

아빠와 엄마는 딸 한 명과 아들 둘을 낳았는데, 아빠는 첫 번째 딸이 태어나기도 전에 집에서 빈둥거리기 일쑤였다고 했다. 평양 동쪽(현재 주소로 평양특별시 승호지구)에 내 친할머니가 마흔이 넘어서 얻은 5 1녀중 막내아들이었던 내 아버지는 어리광을 다 때기 전에 부모님과 헤어져 남쪽으로 피난을 왔으니, 남쪽 생활과 전쟁 속에서 형들뿐인 가족틈에 어리광도 버리지 못했고, 책임감도 스스로 배워내지 못했었다.

그런 와중에 미녀(내가 봐도 엄마는 미녀다. 나이 팔십이 넘은 지금도 미녀스러운데, 처녀적 사진을 보면 누가봐도 넘어갈 타입이다)인 엄마를 알게 되었으니, 아빠의 남성 본능을 탓할 수야 있으랴.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고난의 2부는 아빠와의 결혼생활과 함께 시작되었다.

누나가 태어났다. 엄마의 친정은 청와대 뒤쪽 인왕산 자락에 자리잡은 세검정이라는 동네였다. 엄마의 살아남은 유일한 형제였던 외삼촌이 결혼해서 외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고 있었고, 엄마가 결혼하기 전까지 공장을 다닐 때에 계속 살던 동네이다. 그곳에서 누나를 낳았다.

누나는 1968 1 20일 태어났다. 그리고 다음날 일명 1.21 사태가 일어났다. 북한인민공화국(북한)에서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들을 청와대를 목표로 침투시켜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던 사건이 1.21사태라고 한다. 청와대 뒷마을이었던 세검정 동네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또 다시 전쟁이 났다며 모두 피난을 갔다고 했다. 하지만, 외할머니와 첫 딸을 낳은 엄마와 태어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는 피덩어리 누나는 피난을 못 갔다고 했다. 기구해야만 운명의 팔자였는지 아빠는 첫딸을 안고도 기뻐하기는커녕 못생겼다며 싫어했다고 했다. 누나와 나는 아빠를 빼닮았고 세 남매중 막내인 남동생은 엄마를 빼닮았는데, 아빠는 딸바보의 희망을 보이기는커녕 자신을 닮은 첫 자식을 예뻐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 나이 열두 살, 누나 나이 열네 살 때, 아빠는 스스로 이 세상과의 이별을 선택했지만, 어떤 유서나 유언도 없었다고 하니,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답답한 인생에 대한 막막함에 힘겨웠으리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을 꼭 닮은 첫 딸을 대놓고 예뻐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결혼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꿈꾸었을지도 모르는 엄마의 제2의 인생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더니, 무책임한 못난 남편과의 이른 사별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십대 초반의 자식 세 명과의 남겨진 삶은 엄마에게 새로운 고난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요즘도 가끔 엄마는 말하곤 한다. 아빠의 스스로의 죽음 이후에 엄마의 시댁(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월남했던 아빠의 네 형제 중 첫째네) 역할을 했던 첫째 큰어머니는 엄마에게 재혼을 하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자식 셋을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아마 엄마는 아버지 복도 없고, 남편 복도 없었는데, 자식도 복도 없을지라도 그냥 운명이려니 받아들였을 것 같다.

아빠의 죽음 이후 첫째 큰집과는 자주 왕래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지금까지도 자주 왕래를 하고 있고, 우리 삼 남매의 학비와 생활비, 심지어는 쌀값까지도 보태주셨던 넷째 큰아버지 큰어머니에 못지 않게, 그 형제 중 막내의 남겨진 식구들에 대한 안부를 궁금해하셨고,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해에는 첫째 큰집에서 우리의 셋방살이를 끝낼 수 있도록 작은 집도 한 채 사주셨었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3년동안 수업료를 장학금으로 받기로 하고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의 진학이 예정되어 있기는 했었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려면, 학비 면제만으로는 다닐 수는 없었다. 교통비도 필요했고, 교과서도 참고서도 사야 했다. 도시락도 두 개씩 싸 들고 다녀야 하는데, 그 당시 우리 집은 한 학교에 몇 명씩 있었던 생활보호대상자(요즘 사회복지 제도에서는 기초수급대상자)였던 시절이라 고등학교 진학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국민학교 5년까지가 학벌의 전부였던 엄마의 소원은 자식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고등학교까지는 졸업하는 거였다. 엄마가 나에게 부탁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엄마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고등학교까지 졸업해달라고.

엄마는 손수레에 간장을 싣고 팔러 다녔다. 새벽 첫차를 타고 다른 도시의 세차장으로 일도 다녔고, 수년간 같은 집의 파출부로, 어느 사무실 건물의 청소원으로 새벽 출근을 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의 정신적 강인함을 놓지 않게 해준 곳이 있었으니, 엄마가 이십대 초반부터 다녔던 그 교회이다. 내 또래 이상이면 한 두 번쯤 들어 봤음직한 사이비 종교로 낙인 찍혀있는 기독교계 종파이다.

지금 엄마는 그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몸이 교회로 향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까지 교회로 향하고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팔순이 넘은 나이라 혼자서는 쉽게 다닐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생을 모셔온 그 교회의 사이비스러움(엄마에게는  신비스러움)을 더더욱 견고하게 간직하며 엄마는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뻔한 말이지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이고, 그런 사회가 아니라 할지라도 나는 누구나 직업과 거주와 종교와 정치에 대한 자유로운 판단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엄마의 팔십여년 인생 중에서 육십년 종교생활에 종지부를 찍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나는 엄마에게 그런 강요를 할 자격도 없을 뿐더러, 엄마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마음의 안정을 갖게 해주었고, 배신하지 않았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었으니, 지금의 우리 삼남매가 사회에서 가정에서 제 몫의 역할들을 하고 있는 것은, 그게 모두 그 종교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 엄마는 확신하고 있다.

엄마는 늘 나의 바람막이였고 우산이었다. 그런 엄마가 많이 늙으셨다. 이제는 외출할 때는 항상 지팡이를 찾고, 노인용 유모차를 끌고 나선다. 엄마와 나는 삼십 년의 나이 차이와 그 만큼의 세대차이만큼 생각의 차이가 크지만, 나는 엄마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해야  한다.

몇 년전 엄마는 노인정의 어느 할머니와 싸움이 있었다. 노인정에서 감투를 쓰고 있는 상대방 할머니를 비롯한 몇몇 할머니들의 노인정 회비와 외부 지원 물품들을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일들이 있었고, 엄마는 그런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상대방 할머니를 밀었고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할머니는 작은 엄살과 함께 병원에 며칠 동안 들어 눕는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노인정의 감투를 쓰신 할머니들은 모두 감투를 벗었고, 팔십의 엄마는 경찰서에 폭행 신고가 되어 그 할머니의 병원비와 벌금까지 물어내야만 했다.

엄마는 불의를 참지 않는다. 몸이 고되더라도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엄마의 팔십년 인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늘 스스로 극복해내는 방향을 선택한다. 어찌보면 엄마의 그런 모습이 엄마 스스로를 평생 가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했고, 풍족함으로부터 가깝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사건에 대해 엄마의 판단은 언제나처럼 올바른 것이었을지는 몰라도 엄마의 행동은 올바르지 못했다. 그날 저녁 엄마가 말했다.

너는 좋겠다. 엄마가 있어서…”

평생 억척같이 살아온 엄마이지만, 엄마도 엄마의 바람막이가 되어줄 엄마의 엄마, 엄마의 아빠, 엄마의 남편이 필요했겠구나. 앞으로는 이 아들이 엄마의 바람막이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서울 마포구 상암동 난지도 공원(?)옆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 도서관이 있다.

오늘 처음 가봄.
방송대 과제물이 밀려서
다음주까지 3개를 써야하는데
집에서는 유튜브에 빠져서 안되네.

기념관 열람실에서 노트북 전원 꽂고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과제물 2개 끝내고 왔다.

내일 오전에는 3시간동안
zoom으로 출석수업이 있으니
오후에 가서 과제물 퇴고 마무리하러 또 다녀 와야겠다.

맹모삼천지교..
그 깊은 무의식의 진리를 인정하게 된 날.

집근처 시설 좋은 도서관이 있으니
요즘 애들말로 "개꿀" 빨러 자꾸 가고 싶어진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자동차 종합검사 받으러 왔다.

엔진오일부족..
브레이크 패드 마모..
휠얼라이먼트 불량..

주인이나 차나 갈때가 된듯 하다.

브레이크패드 부품 오려면 기다려야 한다길래
내 인생의 남아있는 시간들이 그다지 소중하지 않을듯하여
기다리기로 했다.

자동차 검사장 휴게실 한쪽 구석에 자리잡았다.
들어누운 곳이 안방이요
책 펼친곳이 공부방이다.

행운이다.
가방에 노트북이랑 책이랑 있어서..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국어굶는과 "소설창작론" 중간과제
- 본인의 주변에서 갈등 사례를 수집한 후,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하시오.(30점) 
- 분량 : A4 기준 4-5매(공백포함 5000자 ~ 70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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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다시 기어 들어온지 어언 다섯달..
매월 급여에서
4대 보험료가 공제되고 있는데도,
매달 추가로 지역건강보험료가 자동이체되고 있었다.

건강보험공단에
어렵게 전화연결이 되어 물어보니
예전에 부산에서 프리랜서로 직장다니던 곳에서의 
퇴직증명서 또는 해촉증명서를 보내란다.

빼갈때는 소득추적해서 빼가더니
안빼갈테니 증거를 갖다 대란다.

마음이 슬아(슬프고 아프)다.

요즘..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다닌다.
허리보호대를 해야한다고 하는데,
병원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9만원이란다.

당장 허리가 아프다니 
인터넷 최저가 검색을 하고
택배물건을 기다리기에는
걷지도 못하는 내 허리의 불만이 너무 크다.

허리보호대를 둘러차고
집구석에서 데굴거리며
혹시나 인터넷에서 찾아나보니
똑같은 허리보호대가 4만 3천원이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는다.

온열찜질 15분이랑
전기자극 15분 받고 나오면
수납창구에서는
5천 8백원짜리 영수증을 들이민다.

물리치료는 효과가 없는것 같다.
환자는 약자다.
물리치료 받으라니 물리치료를 받고
돈을 내라니 돈을 낸다.
환자는 물주다.

허리에 맞는 주사 3방과
꼬리뼈 끝에 맞는 주사 1방이
허리의 통증과 다리의 저림도 많이 완화시켜 주는것 같다.

인터넷에서
의자허리받침대 1만 2천원과
전기온열찜질기 2만 8천원과
저주파자극치료기 3만 9천원에 주문했다.

집에서 물리치료를 자가 치료하다가
일주일만에 병원에 갔다.

꼬랑지뼈에 주사 1방을 맞았다.
4만 8천 백원이란다.

꼬랑지뼈에 깊이 찔러진 주사바늘의 
인고의 고통을 견뎌낸 저녁 시간..
어느새 허리의 통증도 오른쪽 다리의 저림도 사라졌다.

디스크를 감싸고 있는 뭐시기가 찢어졌다고 들은지,
다음주면 4주째다.

수고했다 허리야.
다 나으면 산책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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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개개.. 공백포함 953자..
택도 없이 쓰레기 됐네..
대상을 바꿔야겠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어느새 코로나 천만명 시대..

감히 0.1%의 삶을 꿈꾸지는 않지만
언제가는 맞닿아야 할 일이라면
나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코로나를 맞이하고 싶다.

남들한테 다 들릴때
나한테 안들리면
코로나도 외면한 인생인듯 슬퍼질테니..

이번주 불금엔 저녁약속이 있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불용불필

My Life/2022년 2022. 3. 23. 08:25

브라자 끈만 봐도 발딱거렸던
성기발랄의 추억도
전설 속 이야기가 되어버린지 이미 오래.

"불용불필"이라는 말이 있던가?

사용하지 않으니
고추도 허리도 맥이 없구나..

요즘엔 허리가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사랑과 일의 노예로
뜨겁게 불살랐던 젊은 날의 열정도
빠르게 식어가고 있으니..

다음번 망가질 장기는
B컵 두터운 가슴 속에 자리잡은
"심장"일까 두렵다.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동학 진드기

My Life/2022년 2022. 3. 22. 08:05

동학진드기.

이십 수년전 어느날..
대학원 등록금으로 모아둔
적금을 깨고
주식쟁이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 후로
그 기나긴 세윌을 흘려보내는 동안
나는 지루한 원칙을 지키고 있다.

. 빚내지 않는다.
. 손절 하지 않는다.
. 작전주를 타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느 코스닭 주식의 굿바이 상폐와
믿었던 대기업과 은행주의 갑작스런 감자 소식을 받았을때에도
스스로 손해보고 주식을 팔아본 기억은 없다.

다만..
부동산을 사려는데 몫돈이 부족했던 적엔
손해보고 판 주식으로
이익난 부동산을 구입했었으니
작은 손해를 내주고 큰 이익을 낸 셈이려다.

진드기는 욕심이 없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동학 진드기로 살아갈테다.
서양 꿀은 내 식성이 아니다.

수퍼개미들의 전투식량과는 비교조차 안되지만
나는 다시 태어나도 진드기로 살렸다.

멀건 설렁탕 한 그릇만 사먹을 수 있어도 좋으겠다.
산업의 쌀 반도체로 밥말아먹다 체해서,
바이오 약을 사먹으려는데..

진드기는 여전히 가난하다.
I stay poor.

동학 진드기는 여전히 배고프다.
I stay hungry..

Posted by 우라질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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